작성일 : 13-03-28 19:21
현대 문학은 어디로 가는가?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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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文化)라는 말은 글(文)을 읽고 배움으로서 인간성을 보다 풍요하게 개발한다는 유교문화권의 견해에 근거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글을 많이 읽은 사람을 문화인(文化人)이라고 존경하고 글을 모르는 사람을 미개하다고 무시하였다. 선현의 지혜를 배워 우리의 삶을 올바르고 풍요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이 바로 글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도 동양과 유사한 인식에서 문화를 이해하였다. 문화(culture)라는 말은 본래 cultus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참된 인간성과 이상적인 사회를 개발(cultivation)하는 과정과 그를 위한 교육을 의미한다. 이와 유사어인 civilization도 시민(civis)의 예의와 공동정신을 개발함으로서 이상적인 정치공동체를 실현하려는 의도가 표현된 말이다. 실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화라는 말은 이상적인 인간과 사회를 형성하는 과정(process)이라는 공통적 사고를 반영하고 있다. 문화에는 그 사회가 지향하는 이상이 전제되며, 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목적의식이 그 원동력이 된다. 그리하여 인류는 지금까지 반인간적이며 반사회적인 움직임을 억제하고 인간성의 개발과 이상적인 사회의 건설을 시도함으로서 상대적인 의미에서 문화적 발전을 이룩하여 왔다.

그러면 현대문화는 어떠한가? 현대문화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오늘날의 문화는 그 목적의식과 방향성을 점차 상실해 가면서 혼란과 반란의 늪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실로 현대문화는 문화의 의미와 목적의식을 상실해가고 있다. 문화란 발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노력이기 때문에 그 이상과 목적이 분명해야 되는데, 현대문화는 그 결과나 미래를 고려하기 보다는 오늘의 즐거움과 쾌락을 만족시켜 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건전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소설을 쓰고 드라마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무조건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인기를 얻고 돈을 벌 수 있으면 아무리 인간성과 사회에 악영향을 준다하여도 고려하지 않고 감행한다. 심지어는 소위 사회적 통념을 허물어 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올바른 문화적 이상을 무너뜨리는 것을 자기의 목적으로 삼고 문화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결과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문화라는 영역은 이상론(理想論)과 무(無)이상론과 반(反)이상론이라는 세가지 의도가 혼전을 보이는 난장판으로 변해버렸다. 이러한 혼란이 바로 우리가 매일 보는 T.V.와 언론과 음악과 연극과 영화 등에 여실하게 반영되고 있다. 동일한 텔레비젼방송국에서 어떤 프로는 이상론을, 어떤 프로는 반이상론을, 또 어떤 프로는 무이상론을 채택한다. 사설에서는 이상론을 펼치는 신문이 문화면에서는 반이상론을 주장하고 광고에서는 무이상론을 팔고 있다. 그 방송사나 신문사의 사시(社是)에는 건전한 이상을 걸고 있지만 돈과 인기라는 경쟁적 자본주의시대에서 분명한 목적의식과 방향성을 뒤로한채 윤리위원회의 눈치나 보면서 운영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 목적의식이 분명하고 인간성과 인간사회의 건전한 개발이라는 방향성이 뚜렷해야 "문화"라고 할 수 있고 "문화활동"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지, 이러한 방향에 역행하는 행위는 아무리 겉으로 문화같이 보일지라도 실상은 "반문화(反文化, anti-culture)"일뿐이다. 왜냐하면 그 행위의 결과가 인류의 발전을 저해하고 퇴보시키는 반란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문화라는 말이 너무 남용되고 있다. 심지어 반문화도 문화라고 불리우고 있으며, 인간의 문화를 기술적으로 방해하는 사람들도 문화인이라고 대우를 받는다. 우리는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하여 "형식으로서의 문화"와 "본질로서의 문화"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문화는 좁은 의미로는 주로 예술을 의미하므로 형식상 예술의 범주에 연결시킬 수 있으면 무조건 문화라고 부른다. 그러나 예를 들어 "음란문화"라는 말은 어떠한가? 음란을 조장하는 영화는 그것이 영화이기 때문에 형식으로는 문화라고 불리더라도 그것이 인간성과 사회의 건전한 개발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질로는 오히려 반문화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참된 문화를 보호하기 위하여 소위 "문화라는 이름의 반문화"를 들추어내야 한다. 양의 탈을 쓰고 오는 이리에게서 탈을 벗겨 그것이 양이 아니라 우리에게 해를 주는 이리임을 드러내 보여주어야 한다. 문화비평가들이 이 작업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문화적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무엇이 우리 인간성과 우리 사회에 진정한 도움을 주며 올바로 개발시켜줄지 판단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진정한 즐거움과 만족을 줄 것인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분명하다. 술과 마약은 사람에게 순간적인 즐거움과 행복감에 젖게해 주지만, 그러한 화학적 작용에서 깨어나면 불쾌함과 불행감이 엄습하고 계속적인 의존은 결국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 자체를 파괴해 버린다. 이렇게 사이비 행복감을 주는 것은 단지 이런 화학물질뿐 아니라 소위 문화라는 탈을 쓴 반문화들도 마찬가지다. 요즈음 이러한 반문화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성과 폭력을 부추기며 현대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자극도를 상승시켜 이제 무감각의 상태로까지 인간성을 파괴하고 있다. 인간의 부정적 성향을 부추겨 인간성을 보다 더 타락시키고 파괴하는 것은 아무리 형식이 문화같이 보인다 할지라도 문화가 아니다. 음란영화를 보면서 성적 쾌감을 느낀다면 이는 사이비 행복감이 아닐 수 없으며, 폭력영화를 보면서 자신이 우쭐해 한다면 이는 사이비 자신감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오해하게 만들고 자기 속의 무절제성과 폭력성을 부추겨 정상적인 인생과 사회생활을 어렵게 만들뿐이다. 인간의 성이란 인격적이고 윤리적인 관계에서만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현대의 성숭배풍조를 타고 성정치이론을 내세우며 우리 한국에도 동성애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논쟁거리가 되다니 우리 지성의 수준이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반문화이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인류가 전통적인 이성애를 버리고 그들의 주장에 따라 동성애를 채택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백년안에 인류는 지상에서 멸절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동성애가 얼마나 인류사회에 파괴적인지는 명백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동성애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성생활의 실제인 것이다. 제아무리 그럴싸한 이론으로 장식한다고 할지라도, 그 실상은 동성애의 현장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개인주의적 쾌락주의와 상업주의로 인간의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자아를 부추기는 행위는 모두 기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광고만능주의를 부르짖으며 인간의 교만과 시기와 탐심을 교묘히 자극하는 광고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 물건을 사면 행복해지리라는 환상을 주지만, 그토록 원하던 그 물건을 구입한후 조금만 지나면 그 행복감은 사라지고 다시 불행과 불만족 속에서 계속 그런 실수를 반복한다. 저질 코미디와 저질 만화나 저질 소설은 인간성을 저질화시키며 결코 인간의 진정한 개발과 문화에 공헌할 수 없다. 이러한 반문화들은 인간에게 순간적으로 사이비 행복감을 주지만 실상은 인간성과 사회에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문화는 인간의 개발이 목적이기 때문에 결국은 인간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지만, 그것이 우리 인생은 아니다. 그 문화 혹은 반문화의 결과로 개발되는 나의 인간성과 우리 사회가 궁극적 실체인 것이다. 현대인은 문화 자체와 인간 자신을 심각하리만큼 혼동하고 있다. 어떤 연주회에 참석했다고 해서 모두 같은 수준의 인간은 아니며, 같은 상표의 옷을 입었다고 해서 인간성이 같이 개발된 것도 아니다. 문화활동이란 나의 인간성을 올바로 개발하는데 도움을 주는 문화를 이용하고 참여하는 모든 활동을 포함하며, 문화의 목적은 나 자신과 우리 사회의 건전한 개발과 발전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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